D-27<!-- wp:paragraph --> <p>송하영 개인전<br>SONG HAYOUNG SOLO EXHIBITION</p> <!-- /wp:paragraph --> <!-- wp:columns --> <div class="wp-block-columns"><!-- wp:column --> <div class="wp-block-column"><!-- wp:paragraph --> <p><strong>경계에서 파빌리온으로 (From Boundary To Pavilion)</strong></p> <!-- /wp:paragraph --> <!-- wp:paragraph --> <p>전시장을 하나의 구조물로, 벽도 지붕도 결정되지 않은 채 정해진 기간 동안 존재하기 위해 세워지는 임시 구조물로 상상해본다. 일시적이지만 지금 이 순간의 밀도를 택한 건축물, 파빌리온. 이번 신작은 송하영 작가의 언급대로 "파빌리온이 가진 모듈성과 임시성, 층위, 그리고 안과 밖이 서로 이어지는 개방적인 구조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회화 역시 그렇게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작가는 전시가 열리는 동안 정해진 결론으로 굳어지기보다, 관람자의 감각과 사유가 평소와는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는 자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p> <!-- /wp:paragraph --> <!-- wp:paragraph --> <p>그 개방적인 구조를 이루는 것은 그가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있는 화두, '경계(boundary)'다. 작가는 기차의 역방향 좌석에 앉아 이미 지나온 풍경을 마주하는 것처럼 이 '경계'를 특별한 장소가 아닌 대개 이동 중에 포착한다. 시차를 두고 응시한 풍경은 방향과 속도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건물의 외벽, 유리창의 반사, 공사장의 임시 구조물, 오래된 표면에 남은 시간의 흔적들이 그렇게 스쳐 지나가며 눈에 들어온다. 그에게 이런 순간들은 고정된 풍경이라기보다, 시간과 방향, 표면과 흔적, 빛과 반사가 겹쳐지는 상태에 가깝다. 그가 도시에서 포착하는 것은 특정한 장소나 장면이라기보다, 그 안에서 감각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다시 흔적으로 남는 과정 그 자체다.</p> <!-- /wp:paragraph --> <!-- wp:paragraph --> <p>이렇게 포착되는 경계는 다양한 표정을 담고 있다. 도로의 선, 구조물의 모서리처럼 뚜렷하게 나뉘는 지점이 있는가 하면, 빛과 그림자처럼 서서히 겹쳐지는 자리, 색이 조금씩 다른 색으로 변화하는 순간처럼 나뉨과 만남이 동시에 일어나는 지점도 있다. 전자가 도시의 인공적이고 질서 있는 경계라면, 후자는 자연이 가진 유동적이고 감각적인 경계다. 화면 위에서 이 경계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번역된다. 뚜렷한 경계는 선으로, 스며드는 경계는 면과 면이 밀고 당기며 교차하고, 그 위에 빛이 잠깐 맺히거나 시선이 멈추는 곳에는 점이 놓인다.</p> <!-- /wp:paragraph --> <!-- wp:paragraph --> <p>결국 경계란 무언가를 나누는 선이기에 앞서, 서로 다른 것들이 마주하며 관계를 맺는 접점이라는 것이 그의 작업을 이끌어온 핵심이다. 나뉘어 있지 않았다면 애초에 마주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분리는 관계의 결핍이 아니라, 관계가 성립하기 위한 전제다. 그가 화면에 옮기는 것은 눈 앞의 풍경 그 자체라기보다, 그 풍경 속에 있으면서도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속도와 거리감, 온도와 감정의 층위에 가깝다. 작가는 눈에 보이는 장면을 그대로 옮기는 대신, 그 안에 숨은 비가시적 감각과 지각의 영역을 색면과 구조라는 언어로 번역한다.</p> <!-- /wp:paragraph --> <!-- wp:paragraph --> <p>이 화두는 십여 년에 걸쳐 여러 작업을 통해 드러났다. 2010년대 초반, 작가는 원형 액자나 목재 가구 위에 인물과 사물의 이미지를 그려 넣는 방식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Hot Place》(2013)의 원형 프레임, 《Time to leave》(2014)의 벤치와 테이블 위에 놓인 서사적인 장면들에는 아직 개념보다 이야기와 오브제를 향한 관심이 짙게 남아 있었다. 이야기를 덜어내는 과정에서 작가가 다음으로 주목한 것은 오브제 위의 서사가 아니라, 그 서사를 담아내던 틀 자체였다. 2017년 무렵부터 화면은 급격히 절제되고, 팔레트는 청색과 무채색으로 좁혀진다. 《Boundary》(2017)의 다이아몬드 캔버스, 부유하는 사각형이 놓인 화면은 캔버스의 형태 자체를 경계의 문제로 다루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p> <!-- /wp:paragraph --> <!-- wp:paragraph --> <p>평면 회화를 오래 다루면서, 작가에게는 자연스럽게 ‘회화의 표면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따라붙었다. 경계를 고정된 선이 아니라 유동하는 관계로 본다면, 회화의 표면 역시 2차원에 갇히지 않고 주변 공간과 함께 움직일 수 있다는 데 생각이 닿았다. 이 발상은 2020년 회화를 캔버스 밖으로 밀어낸다. 《틈(사이에서 빛나고 있던 것들)》(2020)의 네온 조명, 《Beyond the times》(2020)에서는 단색 패널과 타일 조각이 공간에 기대어 선다. 빛과 반사, 움직임, 그 앞을 지나는 관람자의 위치 같은 조건들이 작품 안으로 밀려들면서, 회화는 매번 다르게 반응하는 구조로 변모하였다. 보는 각도와 자세, 몸의 위치가 바뀔 때마다 인상이 달라진다는 것, 그리고 그 변화 자체를 작업의 일부로 끌어안으려는 생각이 이 시기를 관통한다. 회화가 품을 수 있는 폭을 다시 가늠해보려는 시도에 가까웠다.</p> <!-- /wp:paragraph --> <!-- wp:paragraph --> <p>작가는 2022년 이후 작은 단위들이 모여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모듈 형식을 탐구하며 채도 높은 색상을 선택한다. 《수축과 팽창》(2022)처럼 벽을 따라 리본처럼 이어지는가 하면 《Reassemblage》(2023)의 기하학적 조각들이 그리드로 반복된다. 그리드 위에 반복되던 조각들이 만들어내는 빛의 잔상과 움직임은, 작가의 관심을 구조 자체에서 그 구조가 만들어내는 빛의 현상으로 옮겨놓는다. 2024년에는 빛이 은유를 벗고 직접적인 형태로 그려진다. 《Flare & Highlight》(2024)의 수렴하는 흰 삼각형, 모터로 실제 움직이는 캔버스를 구현한 최근작 《Sequence: Overlay》(2025)까지 다양한 매체와 구성을 통해 회화의 표면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실험하였다.</p> <!-- /wp:paragraph --> <!-- wp:paragraph --> <p>이 모든 확장의 이면에는 오히려 절제를 향한 태도가 자리한다. 건축과 음악, 도시의 장면들, 동시대의 속도감 같은 이질적인 장면들이 작업 곳곳에 혼재되어 있지만, 그 장면들이 화면 위에 그대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작업은 단순하고 절제된 색면추상의 형태로 남는다. 작업의 실행에 앞서 개념과 구조를 먼저 세우려는 작가의 태도가 이 과정을 이끈다. 체화된 여러 겹의 감각이 소수의 색과 면, 구조로 압축될 때 그것이 보는 이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이 물음이 그가 화면 앞에서 가장 오래 머무는 지점이다. 레이어를 쌓는 시간 역시 그 절제를 몸으로 익히는 수행에 가깝다. 색이 정해지고 붓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반복되는 행위 속에서 잡념 없이 화면에 머무르게 된다. 고른 리듬으로 붓질을 이어가는 동안, 화면 안에는 색의 깊이와 밀도, 그리고 지향했던 결이 서서히 쌓여간다.</p> <!-- /wp:paragraph --> <!-- wp:paragraph --> <p>이번 전시는 이 모든 실험 이후, 벽 앞에 선 관람자와 마주하는 회화의 가장 오래된 조건으로의 복귀다. 이 회귀는 그동안 쌓아온 질문들을 가장 정제된 형식으로 드러낸다. 신작에서 색은 눈에 띄게 줄었다. 노랑 계열의 작업은 열림과 통과의 감각에 가깝다. 빛과 신호, 환기를 동시에 품은 노랑은 조합과 배치에 따라 온도와 밀도를 달리한다. 주황 계열에서는 그 감각이 한층 압축되고 물성을 띤 상태로 나타난다. 따뜻하면서도 강한 밀도로 화면 안의 긴장과 구조를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 색들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감각, 도시의 표면, 흔들리는 경계, 그리고 동시대의 리듬에서 길어 올린 것들이다. 색을 정하는 데 일정한 규칙은 없다. 다만 그 색이 다른 색 옆에 놓였을 때 어떤 온도와 밀도, 긴장이 생기는지 화면 안에서 끝없이 되짚어보는 시간이 있을 뿐이다.</p> <!-- /wp:paragraph --> <!-- wp:paragraph --> <p>그 과정은 결국 경계를 하나의 결론으로 규정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 확장해가려는 태도와 다르지 않다. 여기에 펄과 실버가 섞인 면들이 더해지면서, 정면에서는 하나의 색처럼 보이던 것이 위치를 조금만 옮기면 다른 온도로 다가온다. 여러 겹의 캔버스가 쌓여 만드는 물리적 단차 역시 같은 논리다. 층은 물리적 두께라기보다 색과 구조가 겹겹이 축적되는 방식인 동시에, 회화가 공간 쪽으로 뻗어나가는 또 다른 조건이다. 전시장의 구성 역시 이전보다 절제되어 있다. 알루미늄 프로파일이나 모터 같은 장치로 작품을 벽에서 떼어내고 공간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던 이전 전시들과 달리, 이번에는 캔버스가 벽에 걸리고 관람자가 정면에 서는 회화의 가장 전통적인 방식을 택했다.</p> <!-- /wp:paragraph --> <!-- wp:paragraph --> <p>그러나 이 단순함은 비어 있지 않다. 제한된 색과 요소 안에서 색면과 선이 만드는 균형과 긴장은 오히려 더 예민하게 조율되어 있다. 작업은 가까이서, 옆에서 그리고 다시 멀리서 볼 것을 제안한다. 다가서면 색면과 색면이 만나는 단차, 표면에 밴 밀도, 빛의 방향에 따라 뒤바뀌는 색의 인상이 눈에 들어온다. 물러서면 그 개별적인 감각들이 하나의 구조와 리듬으로 통합되는 순간이 온다. 화면은 어느 한 시점에서 완결되지 않고 관람자의 위치와 움직임에 따라 계속 변화한다. 전시가 끝나면 이 임시 구조물은 흔적 없이 해체된다. 다만 한동안 색과 면 사이에서 열려 있던 감각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지속될 것이다.</p> <!-- /wp:paragraph --></div> <!-- /wp:column --></d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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